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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04 프로코피에프 나이 많은 할머니의 이야기 (나탄 밀슈타인)

프로코피에프 나이 많은 할머니의 이야기 Op. 31 No. 2 No. 3
Prokofiev ( 1891-1953 )
Violin: 나탄 밀슈타인 Piano: Georges Pludermacher

20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의 한사람인 세르게이 세르게예비치 프로코피에프(Sergej Sergejewitsch Prokofjew)는 1891년 4월 23일 러시아의 손조프카 (현재는 우크라이나의 영토)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1953년 3월 5일에 모스크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 지방의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던 아버지와 평범한 가정주부로 취미가 피아노연주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프로코피에프는 두 누이를 어릴 때 병으로 잃고 외아들로 성장하였다. 그는 그의 나이 5살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그 이듬해인 1896년 "인디안 갈롭"이라는 제목으로 소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1897년에 프로코피에프는 피아노를 위한 소곡들("왈츠, 행진곡, 론도")을 작곡하였지만, 그가 정식으로 작곡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1902년에 이르러서 였다. 그 후 그는 1904년 글라주노프의 추천으로 상트 페테스부르크 콘서바토리움에 입학하였으며, 그 곳에서 1909년까지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작곡을, 알렉산더 빈클러(A. Winkler)에게 피아노를 사사하였다. 1908년 12월 31일에 프로코피에프는 자신이 작곡한 7곡으로 구성된 모음곡을 가지고 성 페테스부르크에서 피아니스트로서 공식적인 데뷔를 하였다. 1914년에 그는 이 콘서바토리움을 졸업하였는데, 재학 중에 이미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제1, 2번)과 오페라 "막달레나"를 작곡하였다. 이때부터 1917년경까지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그리고 작곡가로서 서유럽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러시아에서 2월혁명이 일어났던 1917년에 프로코피에프는 고전 교향곡을 작곡하였으며, 10월혁명이 일어나자 1918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망명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때까지를 그의 작품세계에 있어서 제1기로 볼 수 있으며, 망명기간인 제2기에 그는 미국과 파리를 중심으로 활발한 연주와 작품활동을 하다가 1923년에 파리에 정착하였다.
 
프로코피에프는 파리에 거주하면서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교향곡 제2번을 비롯하여 실내악곡, 오페라("병든 천사") 등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으며, 1927년에는 러시아를 방문하고 다시 고국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32년부터 1937년까지 그는 모스크바 콘서바토리움의 객원교수를 역임하였는데, 그 사이인 1936년에 그의 가족과 더불어 완전히 러시아로 귀국하였으며, 이때부터 그가 세상을 떠날 때인 1953년까지의 창작시기를 제3기로 본다. 프로코피에프는 자신이 영구 귀국한 1936년에 발레 곡 "로미오와 줄리엣", 어린이를 위한 관현악적 동화인 "피터와 늑대" 그리고 영화음악인 "스페이드의 여왕" 등 대표적인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그 후 프로코피에프는 현악4중주 제2번(1941)에서나 피아노 소나타들 또는 발레 곡인 "신데렐라"(1941), 교향곡 등에서 자신의 특유한 현대성과 조화된 높은 예술성을 지닌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작품들
 
『10개의 피아노소곡』(op. 12)
 
프로코피에프가 작곡한 피아노 모음곡 가운데 "10개의 피아노 소곡"(Op. 12)에서는 그의 음악적 특징들이 매우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작품은 그가 1908년부터 1913년 사이에 작곡한 것으로, 그 가운데 두 개의 짧은 주제를 가진 '행진곡'이나 춤곡의 형식을 장중하게 처리한 '가보트' 그리고 4도 화성으로만 이루어진 '마주르카' 등이 잘 알려져 있다.
 
 『피아노 소나타』
 
   프로코피에프는 40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서 모두 9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하였다. 비록 제1번 소나타(바단조, Op. 1, 1907)에서는 프로코피에프만의 독창적인 음악어법을 찾을 수는 없지만, 제2번(라단조, Op. 14, 1912)에서부터 그의 강렬한 스타일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면은 1917년에 완성하여 후대의 연주자들이 자주 연주하고 있는 단 악장 소나타인 제3번(가단조, Op. 28)에서 일단 그 정점에 이른다. 그리고 같은 해에 작곡된 제4번 소나타(다단조, Op. 29, 1917)까지가 그의 작품시기 가운데 제1기에 작곡된 피아노 소나타이다. 프로코피에프가 망명시절에 작곡한 유일한 피아노 소나타인 제5번(다장조)은 처음에는(1923년경) Op. 38로 발표되었다가, 다시 프로코피에프 자신이 곡을 단순하게 바꾼 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인 1955년에 Op. 135로 출판되었다. 그리고 제3기인 러시아로 영구 귀국한 뒤에 작곡된 소나타로는 제6번부터 마지막 곡인 제9번까지이다. 특히 난해한 기교를 필요로 하는 제6번 소나타(가장조, Op. 82, 1940)나 피아노의 타악기적 사용과 더불어 서정적 면을 조화시키고 있는 제7번 소나타(내림 나장조, Op. 83, 1942)에서 그의 피아노음악에 대한 완숙함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제8번 소나타(내림 나장조, Op. 84, 1944)와 제9번 소나타(다장조, Op. 103, 1947)에서는 이제까지의 소나타들에서 보여 주었던 여러 특징들에 대하여 차분하게 종지부를 찍어 주고 있다.
 
 『피아노 협주곡』
 
   프로코피에프는 다섯 개의 피아노 협주곡들을 작곡하였는데, 그 가운데 제3번(다장조, Op. 26)이 가장 유명하다. 이 곡은 그가 러시아를 떠나기 전인 1918년경에 구상에 들어갔으며 미국으로 건너간 후인 1921년에 완성하여 발표하였다. 이 협주곡에서는 화려하고 현란한 피아노 적인 기교가 자유 분방하게 넘쳐 나고 있으며, 판타지와 시적인 면 그리고 역동적인 면과 매력적인 면이 잘 어우러져 있다. 이 제3번 협주곡은 신고전주의 풍도 신낭만주의 풍도 아니기 때문에 현대적인 감상자들이나 보수적인 감상자들이 음악회장에서 바르톡의 협주곡들이나 스트라빈스키의 작품들과 더불어 즐겨 감상하는 곡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프로코피에프의 러시아적이며 독특한 정서적인 악상이 잘 나타나고 있는 제3번 협주곡은 차이코프스키의 내림마단조 협주곡과 라흐마니노프의 다단조 협주곡과 더불어 러시아의 3대 피아노 협주곡으로까지 불린다.
 
   프로코피에프가 세상을 떠난 후에나 초연 되었던 피아노협주곡 제4번(내림 나장조, Op. 53)은 1931년에 전쟁에서 오른손을 잃은 파울 비트겐슈타인(Paul Wittgenstein)의 요청으로 왼손만을 위한 곡으로 작곡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미 슈트라우스와 라벨로부터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받아 연주하여 대성공한 것과는 달리 이 프로코피에프의 협주곡은 단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으며, 그 후 1956년에 와서야 이 협주곡은 베를린에서 역시 전쟁에서 한 손을 잃은 지그프리드 라프(Siegfried Rapp)에 의해서 초연되었다.

Sergey Prokofiev Tales of the old grandmother Op. 31 No. 2 No. 3
Violin: Nathan Milstein  Piano: Gyorgy Sebok

전곡 Play
1.   Op.31 No.2 - Andantino
2.   Op.31 No.3 - Andante ass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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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불멸의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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