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로딘 교향곡 1번 in Eb major Alexander Borodin ( 1833-1887 ) Conductor : Vladmir Ashkenazy(Royal Philharmonic Orchestra)
작곡가이며 과학자였던 보로딘은 당시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의 한 사람으로서 분주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소년시절부터 음악과 과학을 겸하여 배웠는데 9세 때에 이르러 작곡을 했으며 13세 때는 플루트 협주곡 등을 썼다 하니 그의 음악적인 꿈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17세에 육군 군의 대학에 입학하여 화학과 의학을 전공하였으며 우등으로 졸업한 후 병리학 교수의 조수로 일하였습니다. 23세 깨 무소르그스키를 알게되었고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도이칠란트, 프랑스등의 의학을 연구하기 위해 여러 곳에 여행을 하였습니다.
29세 때에는 발라키레프에게 작곡을 배워 음악인으로서 보다 많은 소양을 쌓았는데 그의 충고에 따라 러시아 국민음악 건설에 적극 노력할 방침을 세웠지만 과학자로서의 교수와 연구, 여성의학을 위한 많은 사회활동에 분망했기 때문에 작곡은 휴가나 병으로 누웠을 때에 하게 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는 44세 때 그의 교향곡의 대표라 할만한 제2교향곡을 발표했습니다. 가륵 "이골공"도 그 당시의 작품이지만 그가 완성 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코카시스의 에메레티아 국왕의 후예인 제데아노프라고 하는 쿠르지아의 귀족의 사생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아버진의 농노였던 프르피리 보로딘의 아들로 입적시켜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므로 그의 음악에 있어서의 동양적 요소는 이같은 혈통에 의한 것입니다. 그의 작품이 중앙 아시아적인 동양적인 야성과 정취가 농후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지만 그의 국민주의로 인해 서구음악 형식이 다분히 들어 있음을 앟 수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서구 음악의 형식을 빌어 여기세 러시아적인 정신을 가미 했던것입니다.
1862년 발라키레프를 만나기 이전까지는 아마추어 음악 수준을 넘지 못하던 화학자 보로딘은 발라키레프의 설득으로 본격적인 음악 공부에 몰두하면서 교향곡 1번을 쓰기시작하였습니다. 5년여의 기간을 거쳐 1867년 완성을 보게 된 그의 1번 교향곡 E flat 장조는 1869년까지 초연이 늦어지다가 발라키례프의 지휘로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후 이 교향곡은 리스트가 1880년 독일의 초연에서 성공하면서 보로딘이라는 이름을 러시아 이외의 곳으로 알리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