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리오즈 (극적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 Op. 17
Hector Berlioz ( 1803-1869 )
Conductor : 세이지 오자와 ( Boston Symphony Orchestra )


베를리오즈, 멘델스존 등 낭만파 음악가들 사이에는 이에 따라 셰익스피어 희곡에 '선율 붙이기 붐'이 일었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69)의 독창과 합창이 곁든 극적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1839)이 손꼽힌다.
  
  표제음악(시, 이야기, 풍경 등을 음악적으로 해석해 음악 표현분야를 확장한 음악으로 문학이나 미술작품처럼 대개 표제가 붙어있다)의 창안자인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로미오와 줄리엣>의 극적 내용과 짙은 서정성을 음악으로 되살려 놓았다. 4부로 나뉘진 이 곡은 각 부마다 표제를 붙어있다. 제1부 서곡 투쟁; 소동, 영주의 중재. 제2부 로미오의 우울함; 음악회와 무도회. 제3부 사랑의 장면; 고요한 밤 저택의 정원. 제4부 사랑의 요정 여왕 마버 등 이런 식으로 표제를 달아 극 내용과 음악의 전개를 같이 했다. 이 작품은 독창과 합창을 포함한 1시간 30여 분짜리의 거대한 관현악곡으로 쓰인 명곡으로 리스트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베를리오즈는 음악가 중에서도 감성과 열정이 풍부했으며 괴팍한 행동으로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생산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음악적 감성을 불어 넣은 계기도 이와 연관이 있다. 짝사랑의 아픔이 숨어있다.
 

  1827년 9월 24세의 풋내기 음악가였던 그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셰익스피어 배우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 해리엇 스미드슨이 파리의 오데온 극장에서 연극 <햄릿> 중 오필리아 역을 맡아 열연하는 모습에 반해 짝사랑의 열병에 빠졌던 것이다. 먼발치에서 사랑만하고 있었다. 만나지는 않고 격정에 찬 편지를 보내거나 혼자 몽유병자처럼 파리 근교 숲속으로 잠적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녀가 다른 남자와 정사를 벌였다는 소문(나중에 근거 없는 일으로 밝혀짐)이 들려오자, 재능 있고 아름다운 피아니스트 카미유 모크와 약혼해 버린다(1830). 홧김에, 아니 해리엇 스미드슨에 대한 대리만족을 모크에게서 구한 셈이다.
  
  프랑스 리옹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시골뜨기인 그는 당시 파리에서 음악견습 중이었는데 셰익스피어와 괴테 읽기에 몰두했었다. 문호들의 인성과 세계관을 흠모해 마지않던 그가 자신의 이야기와 비슷할 것 같은 해리엇 스미드슨에 대한 연애 감정과 <로미오와 줄리엣>에 그려진 비련에 감정이입이 이루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었다. 이루지 못할 사랑 같은 그런 예감이 작용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초기 대작 <환상교향곡>(1830) 이후 재정사정이 여의치 못해 작곡을 미루고 있던 베를리오즈는 바이올린의 거장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1782~1840)가 보내 준 거금 2만 프랑에 용기를 얻어 10년 이상 맘먹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을 완성했다. 그는 <환상교향곡>을 듣고 "베토벤에서 시작된 새로운 음악전통을 계속 수행해 나갈 운명을 지녔다."고 베를리오즈를 극찬한 인물이다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는 자금이 필요하기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터이다. 이 작품 초연 때 그는 20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 대성공을 거두었고 "셰익스피어가 쏘아 올린 사랑의 태양이 강렬한 빛을 받아 되살아났다."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공연수입은 1,100프랑에 불과했다. 수입 면을 제외하곤 완전 성공작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작품으로 부를 쌓기란 어려운 모양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사정은 달라질 수도 있다. 자본주의가 고조에 달한 현재는, 대중적 흥행에 성공하면 돈방석에 앉는 사례도 흔하다.
  
  어쨌든 극적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를 향한 존경심, 이와 연관된 여배우에 대한 짝사랑, 파가니니의 후원과 그의 음악적 열정이 낳은 명곡임에 틀림없다. 그는 숱한 에피소드를 남긴 뒤 1833년 드디어 결혼에 골인 했다. 이에 앞서 약혼자 카미유 모크는 그를 버리고 돈 많은 남자와 결혼했다. 이래저래 베를리오즈는 ‘사랑의 배신감’을 가장 많이 느낀 작곡가 중의 한 사람이다.
 
수많은 시도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시대와 공간을 흘러 다니며 음악가들에게 영감의 씨를 뿌렸다. 발표 당시 연속 100회 상연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1867), 차이코프스키가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의 지도자 발라키레프의 권유로 작곡한 환상서곡 <로미오와 줄리엣>(1869), 브로드웨이 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며 뮤지컬의 걸작인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의 <웨스트 사이드스토리>(1957) 등 이 희곡은 음악의 대가들의 손을 거쳐 선율로 재탄생했다.  
  
  극적 표현력이 뛰어난 <로미오와 줄리엣>은 음악적 형식으로 형상화될 때마다 공전의 히트를 계속했다. 시대를 뛰어넘어 '죽음을 매개로 사랑과 미움이 화해와 평화로 승화되는' 모든 이의 영원한 테마임을 입증한 작품이다. 선율의 출발점에는 베를리오즈라는 거목이 우뚝 서 있음은 물론이다.

Hector Berlioz Romeo & Juliet (Highlights)  Op. 17
Conductor : Seiji Ozawa ( Boston Symphony Orchestra )


전곡 Play
01.   ntroduction.
02.   Prologue
03.   Strophe
04.   Recitatif et Scherzetto
05.   Romeo seul
06.   Ohe! Capulets
07.   Scherzo
08.   Convoi funebre
09.   Romeo au tombeau
10.   Invocation
11.   Joie delirante
12.   Final. Quoi!
13.   Final. Pauvres enfants
14.   Final. Mais notre sang rougit leur
15.   Final. Jurez donc, p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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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불멸의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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