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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1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4번 in C minor, Op 43 (베르나르도 하이딩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4번, in C minor, Op 43
Dmitri Shostakovich ( 1906-1975 )
Bernard Haitink - (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

쇼스타코비치가 1936년 작곡한  4번 교향곡은 기구한 사연으로 25년후에나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 사회주의를 지지하며 오페라 코(1928), 발레곡 황금시대(1930)와 볼트(1931)등 애국주의 적인 작품을 발표했지만 오페라 '코'에 서방의 전위음악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부르주아의 퇘폐적인 음악이라는 이유를 붙여 공연을 금지하게 되었고, 결국 1932년에 발표한 오페라 '므젠스크의 맥베스 부인'은 그가 30세가 되던 1936년 1월27일 관람중이던 스탈린이 불쾌한 마음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다음날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지에는 '음악이 아닌 무질서'라는 제목으로 '비뚤어진 좌익' '부르주아적 감각주의' '형식주의'등의 비판기사가 올라오게되는데 당시 관람했던 스탈린이 직접 쓴 기사라는 말도 있습니다.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독살하는 장면이 포함된 그 내용이 항상 암살을 두려워하던 스탈린에게 좋게 보였을리는 없었겠지요.
 

동료 음악가들 마져도 그를 비판하는등 궁지에 몰리게 된 쇼스타코비치는 발표예정이던 4번 교향곡은 발표를 포기하고 이듬해 5번 교향곡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곡의 평가는 정반대로 '정의로운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응답'이라고 극찬을 받게 됩니다. 결국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그동안의 비판과 찬사는 독재체제를 구축하고 있던 스탈린이 잘나가던 그를 이용해서 당시 소련의 음악계에 나타나기 시작하던 서방의 형식주의나 모더니즘 경향의 유행에 대한 강력한 경고라고 볼수 있습니다.

 
이후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뒤에도 한참지나 발표하게 되는데.... 1960년부터 키릴 콘드라신이 이끄는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1961년 초연하게되고, 그 이듬해인 1962년 스코틀랜드 애딘버러에서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가 지휘하는 "필하모니아"공연에 의해서 서방에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단악장으로 완성된 2번과 3번과는 달리 고전적 형식을 그대로 답습한, 교향곡의 전형과도 같은 4번입니다. 특히 이 4번은 초연을 앞두고 오페라 “므첸스크의 멕베드 부인(Lady Macbeth Of Misensk)” 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공연이 취소됨은 물론 26년 후에나 빛을 보게 되는 사연 많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승승장구하던 쇼스타코비치에게 처음으로 시련을 안겨준 사건으로서 이 오페라 작품이 1934년의 초연으로 정부로부터도 더욱 인정받게 된 것과는 별도로, 1936년 스탈린이 직접 이 작품을 관람한 것이 계기가 되어 내내 쇼스타코비치를 괴롭혔던 정부 기관지 “프라우다(Pravda-진리)”지에 신랄한 비판의 글이 실리면서 흔히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반동”으로 몰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건이 이만큼 커진 것은 쇼스타코비치의 개인에게 대한 충고라기 보다는 희대의 독재자 스탈린이 한참 전성시대를 보내던 쇼스타코비치라는 상징을 이용해서 당시 소련의 예술계에 나타난 형식주의나 모더니즘 경향의 그것에 대하여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Bernard Hait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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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불멸의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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