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튼 - Sinfonietta, op. 1
Benjamin Britten ( 1913-1976 )
Soloist : Yuri Bashmet  Soloist: Nikolai Lugansky Soloist: Lyn Fletcher  Soloist : Dara de Cogan
Soloist : Tim Pooley  Soloist: Gidon Kremer Conductor : Kent Nagano  Orchestra: Halle Orchestra


성 체칠리아의 축제일에 태어난 것이 좋은 징조였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브리튼은 오드 중에서 종종 음악의 수호신인 이 성 체칠리아에 경의를 표하고 있던 헨리 퍼셀을 위대한 선구자로 인정하고 평생을 통하여 퍼셀의 작품에 경의를 표해왔기 때문입니다. 브리튼은 로우스토프트의 합창단 간사로 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음악에 친숙했습니다. 영국 중산계급의 전통적인 교육을 받고 12세 때 프랭크 브리지의 문하에서 음악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가르침은 브리튼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음에 틀림없습니다. 16세 때 그는 런던의 왕립 음악대학에 입학하여 존 아이얼랜드(작곡)와 아서 벤자민 Arthur Benjamin(피아노)에게 배웠습니다. 이 무렵에 그는 오보에 반주에 의한 환상적 4중주곡 op. 2와 코랄 변주곡 어린 아기가 태어났도다 op. 3을 작곡했습니다. 그러나 브리튼은 음악활동의 전생애에 걸쳐 탁월한 피아노 주자, 특히 피아노 반주자로 활동을 계속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작품에서만이 아니라 가령 모짜르트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그의 작품 신포니에타 op. 1은 1933년의 한 공개 연주회 때 연주되었습니다.
왕립 음악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라디오나 영화 관계의 일에 종사하였으며, 또한 시인 오덴과의 만남을 통해 일련의 공동 제작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1937년 잘츠부르크에서 현악합주곡 프랭크 브리지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 10이 연주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사후(1938), 유럽의 정치 정세에 불안을 느낀 브리튼은 미국으로 건너갔다(1939). 진정한 반군국주의자였던 그는 미국이란 땅에서 자신이 필요로 했던 평화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작곡에 대한 강한 의욕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하여 태어난 것이 일루미네이션, 신포니아 다 레퀴엠, 미켈란젤로의 7개의 소네트 등입니다. 그는 음악상으로도 조국을 떠날 것을 원했는데, 그래서 영국 이외의 나라들의 작품에 대해서 곡을 붙이는 것, 즉 자기 자신의 지평을 확대하기를 원했습니다. 미국에 체재할 때 브리튼은 작곡가로서 성숙한 경지에 달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좋아했던 영역인 오페라에도 처음으로 손을 댔습니다. 그것이 폴 버니언 op. 17 입니다. 그러나 후에 그는 이 작품을 자신의 작품 목록에서 삭제해 버렸습니다.

1942년 브리튼은 뼈아픈 결정을 했다.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는 병역이 면제되어 음악활동을 계속하는 것이 인정되었습니다. 귀국 전 쿠세비츠키로부터 왜 지금까지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브리튼은 조지 크랩 George Crabbe의 한 시를 대본으로 하여 이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쿠세비츠키는 그에게 필요한 경비를 후원할 것을 제의했습니다. 영국으로 귀국하려는 어려운 여행 동안 작곡한 작품 캐럴의 제전 뒤에, 그는 스네이프에서 혼자 생활하였고, 새들러즈 웰즈에서 1945년 6월 7일에 상연된 그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즈는 대호평을 받았습니다. 이리하여 브리튼은 일약 영국 신음악의 새시대를 구축할 사람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동시에 그는 일시적으로 전통적인 대오페라를 버리고, 보다 친밀하고 성공하기 어려운 장르, 즉 실내 오페라로 향했습니다. 루크레시아의 능욕(1946)과 앨버트 헤링*(모파상의 단편소설에서, 1947), 이어서 나사의 회전(1954)이 작곡되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작품의 상연을 목적으로 하여 1946년 영국 오페라 그룹을 창설하여 그 자신이 예술 감독, 지휘자 및 작곡가의 지위에 있었습니다. 2년 후에는 서포크 주의 작은 마을인 앨드버러라는 곳에서 음악제를 창설했는데, 1947년 이래 이 작은 마을의 빨간 집 The Red House이라고 이름붙인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때 이래로 브리튼은 자연 속에서, 그리고 영국인이 특히 좋아하는 해변에서 일을 하고 낚시나 테니스, 스포츠 카, 서포크의 모래언덕을 지나는 긴 산책을 즐겼습니다. 브리튼은 일의 계약을 제외하고는 런던에 가지 않았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연주회를 열었는데 그때는 지휘자로서 또는 반주자로서 참가하였으며, 그의 친구인 테너 가수 피터 피어즈와는 대개의 경우 함께 참가했습니다. 피어즈는 피터 그라임즈 역을 초연했으며, 브리튼은 그를 위하여 유명한 세레나데 op. 31(1943) 같은 가곡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특히 브리튼은 본질적으로는 성악곡 작곡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는 모든 인성에 애정을 갖고 있었으며 유명한 가수들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K. 페리어는 최초의 루크레시아 역을 맡았으며, D. 피셔 디스카우에게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노래와 격언을 헌정했고, 자네트 베커에게는 일부러 그녀를 위하여 페드라 op. 93을 썼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의 특징은 어린이의 목소리에 대한 특별한 기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작은 연통 소제, 캐럴의 제전, 봄의 교향곡, 나사의 회전 중 마일즈 역, 전쟁 레퀴엠 등). 브리튼은 퍼셀과 같은 재능을 가지고 영어를 음악으로 번역했는데, 이 퍼셀이야말로 누가 이 음악가를 비판하는 것을 들으면 화를 낼 정도로 브리튼이 존경하던 음악가이며 또한 직접 이 음악가의 많은 작품을 상연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디돈과 에네아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유명합니다. 브리튼은 다른 누구보다도 영어가 음악작품에 주는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브리튼의 작품은 혁신적이라고는 볼 수 없을지 모르지만 매우 개성적, 독창적, 서정적이었으며 근본적으로 영국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실리적인 인간이었던 그는, 자기의 음악은 항상 그 어떤 욕구에 부응하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고 말해왔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질을 희생시키지는 않았습니다. 대단한 교양을 갖추고 있던 그는 시를 잘 알고 있었으며 또한 다른 사람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도 예민했습니다. 특히 엘리자베스 시대의 거장들의 음악이나 바흐, 모짜르트의 음악, 특히 슈베르트의 음악에 대한 이해에서는 예리한 통찰력을 나타내었습니다. 오늘날 브리튼의 작품은 모든 국제 음악제의 연주 목록에 반드시 오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954년에는 그의 오페라 나사의 회전아마도 그의 오페라 작품의 대표작이 베네치아의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그의 오페라에서의 주제 및 시대 배경은 실로 다양했는데, 타르키니우스 황제 시대의 로마나 한 여름밤의 꿈(브리튼과 피어즈의 대본)의 셰익스피어의 마술, 18세기 영국 선원들의 야만스러움(빌리 버드), 토머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작품, 나아가서는 그 이외의 다른 작품에는 어떤 똑같은 주제가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주제란 부정에 대한 인류의 투쟁 같은 것입니다. 연작 가곡의 수도 많으며 또한 중요하다. 이 섬나라에서(가사 W. H. 오덴, 1938)에는 매우 잘 알려진 퍼셀의 패러디 화려한 음악으로 찬양하자 Let the florid music prais!가, 1965년 앨드버러에서 초연된 윌리엄 블레이크의 노래와 격언 op. 74에는 블레이크가 자기 자신을 비유한 파리에 대한 멋진 상기(想起)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리튼은 또 영국과 프랑스의 몇 개의 민요를 노래와 피아노를 위한 것으로 편곡했습니다. 그의 실내악에 대해 요약한다면, 그의 세 곡의 현악4중주곡은 탁월한 특질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C장조 op. 65와 로스트로포비치에게 헌정한 두 곡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op. 72와 op. 80 같은 작품도 들어 두기로 하겠습니(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 op. 68도 역시 로스트로포비치에게 헌정되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쉽게 작곡된 브리튼의 음악은 때로는 어떤 우쭐함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창조적 영감은 결코 비속한 것이 아니며, 창조력은 확실히 전통적인 형식에 대한 매우 예리한 감각 위에 수립되어 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남이 없이 이것을 혁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령 피터 그라임즈의 파사칼리아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색채 감각이나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한 그의 재능에 대해서는, 한 여름밤의 꿈의 최초의 몇 개의 음표가 울리자마자 셰익스피어의 세계와 금세기의 영국이 완벽하게 조화된 형태로 융합된 가운데 작곡가가 교묘하게 자아낼 수 있었던 분위기를 상기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Britten - Sinfonietta, op.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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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oist : Tim Pooley  Soloist: Gidon Kremer Conductor : Kent Nagano  Orchestra: Halle Orchestra

전악장 Play
1악장   Poco presto ed agitato
2악장   Variations. Andante lento
3악장   Tarantella. Presto vivace
paint  David T. Alexa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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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불멸의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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