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 신포니아 in G major RV, 149
Vivaldi ( 1678-1741 )
Conductor : Trevor Pinnock ( The English Concert )


비발디, 안토니오 Antonio Vivaldi(1678 ~ 1741 / 이탈리아)
안토니오 '비발디'는 1678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1741년 빈에서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곡가인 동시에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가 였으며, 또한 교육가이기도 하였다.
아버지와 G. Legrenzi에게서 음악수업을 받음. 1703년 신부서품을 받음(천식으로 인해 곧 예전집행은 하지 않게 됨). 1703-40년 베니스의 고아원에서 바이올린 선생과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동.
 

 

 

1703년 카톨릭 성당의 사제로 출발하였으나 건강이 나빠져 1년 후에 물러나 그 후로는 전적으로 음악에 헌신하였다. '비발디'는 붉은머리였기 때문에 항상 '빨강머리의 사제'라고 불리웠었다. 그리고 1703 ~ 1740년까지 베니스의 여자 고아원인 피에타 음악학교의 지휘자 겸 작곡가, 교사, 음악 감독을 역임했었다. 그는 이 학교를 위하여 모테트와 칸타타, 오라토리오 등을 작곡하였다. 특히 '비발디'가 결정한 3악장(알레그로-아다지오- 알레그로)에 의한 협주곡 형식은 J.S.Bach에게 영향을 주어 바로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협주곡 형식이 되었다.
 
비발디는 미사전례를 앞두고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사방을 찾아다니노라면 수도원 으슥한 구석에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니, 결코 모범적인 사제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작곡가겸 바이올리스트로서의 그의 명성은 이미 전 유럽에 퍼져 있었다. 25세 때는 피에타 여자 음악원의 바이올린 교사로 임명되었다. 여성으로만 구성된 그 곳의 오케스트라는 상당히 수준이 높아 그녀들을 위해 많은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똑같은 곡을 1백곡이나 써갈긴 사람이다.' 이것이 험담가로도 유명한 후세의 스트라빈스키가 비발디를 가르켜 비꼬아 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비발디는 교회용, 행사용 등등으로 몇 개 악장으로 된 꽤 긴 곡 을 평균 2,3일에 한 곡씩은 써야 할 처지였다.
 
사보가들이 미처 따라오지 못할 만큼 초고속으로 작곡을 해댄 결과, 그는 협주곡만 해도 450곡이나 남겼으니 그게 그거라고 할 정도로 서로가 엇비슷해질 수밖에.
45세 무렵 비발디는 안나 지로라는 여가수를 알게 되어 순회공연까지 함께 다녔다. 당연히 사제로서 미사를 빼먹는 일은 더욱 잦아졌고,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고울 리 없었다. 베네치아에서의 그의 평판은 갈수록 땅으로 떨어졌다. 결국 그는 고향을 떠나 유럽 각지를 전전해야 했다.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극도의 빈곤 속에서 객사한 것은 그의 나이 63세 때였다. 피붙이라고는 없었던 그를 기다리는 곳이라고는 빈 변두리의 쓸쓸한 빈민묘지 뿐이었다.
 
(작품에 대하여)
클래식 작곡가 중 '거의 대중음악가적인 명성'을 누리는 비발디는 당시에도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중의 하나였으며 작곡가로서 동시대인들의 작품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알비노니, 토렐리와 함께 바로크의 독주콘체르토형식의 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장르는 콘체르토로서 당시에는 매우 새롭게 들리는 음악이었다. 그가 살아있을 때에 출판된 14개의 모음집은 그의 소나타와 콘체르토를 널리 세상에 알려주었다.
그의 콘체르토는 오페라의 요소를 담고 있으며(느린 악장의 모델이 된 것은 탄식가, Lamento), 1700년 경에 쓰여진 선명한 박절적 테마들은 상당히 기능화성학적이다. 그의 테마작법, 선율의 단계적 움직임, 음악형식 등은 당시 바이마르에 있던 요한 세바스찬 바하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그의 9개의 콘체르토가 바하에 의해 다른 악기를 위해 편곡된다.
 
비발디는 현악기의 연주기법을 확대시킨 인물로서도 유명하다
. 그는 바이올린 연주에서 새로운 활 사용법 등을 포함해 제12포지션까지 요구하였으며, 첼로 콘체르토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엄지손가락만을 이용해 연주하도록 지시하기도 하였다.
 
비발디는 오페라 작곡가로서 그리고 흥행가로서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여가수 안네 지로(Anne Giraud)와의 친분관계로 인해 교회지도부에 의해 그의 오페라가 페라라에서 연주 금지된 것(1737년)은 유명한 사건이다. 알려진 49개의 오페라 중 19개는 완전히 그리고 몇개는 부분적으로 보존된 상태이다. 이것들은 대부분 긴 프레이즈의 레치타티보들과 극적인 음악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끔 급하게 쓴 청탁작품들에서는 다른 사람이나 자신의 음악을 차용했다.
 
비발디의 교회음악으로는 55개의 모테트, 찬미가, 미사곡들이 있는데 주로 독창성부와 현악을 위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당시 오페라 스타일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716년에 쓰여진 다채로운 악기편성의 오라토리오 「유디타」를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두권에 달하는 세속칸타타와 1-3개의 성악성부와 계속저음 또는 그 이상의 악기들을 위해 쓰여진 세레나데 등이 있다. 기법적으로 이것들은 스트라델라를 따른다.
 
비발디는 작곡가로서 비교적 일찍 자신의 스타일을 발견했다. 그의 음악은 명쾌·평이하고, 첫 악장과 끝 악장은 기교가 많다. 여기에 적합한 연주음형, 이동반복적인 짧은 테마구성, 즉흥연주와 장식도 특징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비발디는 그의 초기의 스타일에서 많은 발전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그의 생애 후반에 자주 비판되고(예, Quantz) 사후에 대부분의 곡들이 잊혀지게 된다. 비발디의 최대의 단점은 이 곡이나 저 곡이나 거의 비슷하게 들린다는 점이다. 그의 최대의 장점은 말의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의 명료한 프로그램(표제) 음악적 성과이다. 그의 『사계』는 이런 면에서 매우 독보적인 18세기 음악이다.
 
그의 작품의 대강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속한다. 1927-1930년에 A. Gentili가 피에몬테 수도원과 제노바에서 300개가 넘는 콘체르토와 19개의 오페라, 오라토리오, 그리고 여러 권에 달하는 교회칸타타와 세속칸타타 등을 발견하면서 비발디에 대한 연구가 다시 활기를 띤다.
 
그의 작품은 약 770개에 달하는데 그 중에 46개의 오페라, 477개의 콘체로토가(433개 보존) 있다. 독주콘체로토의 독주악기들은 바이올린, 비올라 다모레, 첼로, 플륫, 리코더, 오보에, 파곳, 만돌린 등이다. 이중콘체로토에는 2개의 바이올린, 바이올린과 첼로, 2개의 오보에, 2개의 호른, 2개의 첼로, 비올라 다모레와 류트, 2개의 만돌린, 2개의 플루트, 오보에와 파곳, 2개의 트럼펫이 쓰인다. 3중이상의 콘체르토와 모든 악기가 독주적으로 참여하는 실내 콘체르토도 47개에 달한다. 그의 대표작품인 『화성의 영감』은 12개의 콘체로토 그롯소, 이중 콘체르토, 독주콘체르토로 되어 있다. 그 중 4개의 소네트를 바탕으로 작곡한 『사계』는 수 많은 분위기 묘사, 장면묘사를 보여준다.


Vivaldi Sinfonia in G major RV, 149
Conductor : Trevor Pinnock ( The English Conce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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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불멸의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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