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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14 파가니니 - 바이올린 협주곡 3번
파가니니 - 바이올린 협주곡 3번 in E major MS 50
Niccolo Paganini ( 1782-1840 )
Violin : Salvatore Accardo Conductor : Charles Dutoit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음악사에서 파가니니란 이름은 초절적인 기교가, 비르투오소의 대명사요 원조로 알려져 있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인간의 대양을 뒤엎는 엄청난 폭풍우의 전령사'니 '혜성과 같이 불타는 모습으로 예술의 천상 속에 예기치 않게 나타났다가 엄청난 놀라움과 일종의 공포심까지 유발시키는 흥분을 던져주고는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존재'로 보았다. '작은 이교도'라는 의미를 지닌 파가니니(Paganini)라는 이름에서부터 메부리코의 기묘한 용모, 화려한 곡예적 연주에 이르기까지 그의 행동이나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일면을 가지고 있어, 하이네는 " 그의 인상엔 고뇌와 천재와 지옥의 징조가 역력히 나타나 있었다"라고 하여 그의 운명까지도 갈파했다고 한다. 



천재적인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작곡가인 파가니니의 일생은 누구나 따라가고 싶어했던 기교의 혁신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연주법으로 베일에 싸인 듯, 악마적일 정도의 매우 화려한 연주로 낭만파 음악시대의 황금시기를 누린 예술가로서의 명성만큼, 여자와 돈, 도박으로 얼룩진 생활로 그 악명 또한 높았다. 이러한 파가니니의 파행적 행동은 그가 4살도 되기 전에 앓았던 홍역에서 유래한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한데 홍역 중에 파가니니는 '강직경련'의 증상이 나타나 이틀동안 송장처럼 뻣뻣하게 누워 있어 그의 어머니는 시체를 쌀 수의를 마련해 두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같은 상태에서 '홍역병원체에 의한 만기성 뇌염'이 유발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가들은 이때 앓은 치명적인 질병으로서 그의 비사회적 태도, 자극과잉, 언어동작의 경직성, 성적 탈선, 그외의 파행적인 사생활 등을 설명하고 있다. 


대개의 낭만파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 작곡가의 주변에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나 동시대의 명수들을 염두에 두고서 만든 데 반해 그는 오로지 자기자신이 연주하기 위하여 곡을 만들었는데, 말하자면 자기자신이 개발한 바이올린 연주의 초인적인 기교를 효과적으로 발휘하기 위하여 곡을 만든 것이다.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가였던 파가니니가 남긴 바이올린 협주곡은 모두 10 여곡이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1번과 2번, 2곡만이 전해져 오다가, 전쟁 후에 3번부터 6번까지 4곡이 발견되어 현재 6번까지 확인되어 있다. 이 협주곡 중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은 제1번과 2번인데, 2번의 b단조 작품7은 파가니니의 첫 번째 빈 연주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1828년 이전에 작곡된 것으로 여겨진다.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1782~1840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태어나 프랑스 니스에서 58세로 세상을 떠난 '파가니니'는 19세기 최대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이다. '파가니니'는 19세기 초엽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연주 활동을 하였는데, 신기에 가까운 탁월한 기교에 전유럽이 떠들썩하게 되었다. 


상식을 뛰어 넘는 연주기교에 귀신이란 별명이 붙게 되었다. 심지어 그가 쓰고 다니는 모자, 의복,장갑 등을 모방한 의류가 상점마다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한다. 명성과 재물을 쌓았지만, 한때는 그의 방탕과 도박으로 건강을 잃었을 뿐 아니라 많은 부채로 인해 그가 소중히 여기던 바이올린까지 팔게 되었던 적도 있었다. 


'파가니니'는 자신의 기법을 신비적으로 보이기 위해 단 한명의 제자 밖에는 두지 않았으며, 악보 조차도 공개하기를 꺼려했다 한다. 그래서 '파가니니'의 주법은 유파를 형성하지 못하고 자신의 일대로 끝나게 되었다.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을 연마할 때는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연습을 하였다 하니 그의 기교가 단순히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파가니니'는 역사상 드물게 보는 귀재로 불가능을 모르는 뛰어난 기교와 마력을 갖고 있었으며, 그의 바이올린 음악은 슈만, 쇼팽, 베를리오즈, 리스트,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등의 낭만파 음악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파가니니'가 잘 사용하는 기법은 스타카토와 레가토의 절묘한 대비, 하모닉스의 효과, 왼손의 피치카토, 플레젤레트, 스코르다투라 등으로 당시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절망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뛰어났다 한다. 


  


어머니의 꿈 



‘악마에게 영혼을 판 사나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연주에 감탄한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뛰어난 외모에 화려한 연주 기교까지 갖춘 그는 많은 염문설의 주인공이었으며 유난히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런 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흠모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게 했다. 


파가니니는 이탈리아 제노바의 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음악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들은 멜로디를 악보 없이 그대로 부를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파가니니 역시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으며, 그 재능은 어머니를 통해 발견되고 꽃피울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개구쟁이였던 파가니니는 온갖 말썽을 다 부리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아들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들이 산 로렌츠 성당 종소리만 울리면 쥐죽은 듯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또한 종소리가 그치면 조용히 밖으로 나가 몇 시간 뒤에나 돌아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몰래 파가니니 뒤를 따라갔다. 


놀랍게도 아들은 산 로렌츠 성당으로 들어가더니 무릎을 꿇고 조용히 오르간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는 이것이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파가니니가 성당을 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얘야, 너는 훌륭한 음악가가 될 것 같구나. 내가 몇 주 전에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하느님이 내 소원을 물으시더구나. 그래서 나는 부탁 드렸단다. 내 아들이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하고. 그랬더니 하느님이 고개를 끄덕이셨단다.” 


그날 오후 아버지가 일하러 나간 틈에 파가니니는 아버지의 바이올린을 처음 켜 보았다. 처음 잡아 보는 바이올린을 제대로 켜는 것은 물론 그것에 심취한 파가니니. 어머니는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어머니가 들려준 격려를 믿었을까, 아니면 스스로 자신의 재능을 알았을까? 파가니니는 얼마 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거침없이 성장해 나갔다. 재능과 능력은 어쩌면 작은 믿음에서 피어난 꽃인지도 모른다. 


Paganini - Violin concert No.3 in E major MS 50
Violin : Salvatore Accardo Conductor : Charles Dutoit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전곡 Play
 
01    Introduzione 
02   IAdagio - Cantabile Spianato
03   Andantino viv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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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불멸의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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