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비극적 서곡'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5.15 브람스 / 비극적 서곡 Op. 81 - 카라얀

브람스 - 비극적 서곡 Op. 81
Johannes Brahms ( 1833-1897 )
Conductor : 카라얀 - 베를린 필하모닉

브람스는 같은 해에 대조되는 두 작품을 작곡했다.
그 하나는 맑고 명랑한 <대학 축전 서곡>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 <비극적 서곡>인데, 이 곡은 제목이 가리키는 대로 어둡고 쓸쓸한 느낌을 준다.
브람스는 이 곡을 가리려 '우는 서곡'이라고 불렀다. 작품이 완성되자 브람스는 곧 <대학 축전 서곡>과 함께 4손을 위한 피아노곡으로 편곡하여 클라라 슈만에게 생일 선물로 바쳤다.
클라라는 1880년에 이 두 곡을 선물 받자, 반나절 동안에 연습을 다 끝내고 저녁에 브람스와 함께 연주했다. 그리고 관현악은 요아힘의 지휘로 그 해 12월 초에 베를린 호흐슐레에서 연주되었다.
브람스.. 고독한 영혼의 표상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무뚝뚝한 분위기를 풍기는 브람스의 사진을 보면 우수 깊은 눈동자 속에 고독이 잔뜩 배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의 음악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가을날의 쓸쓸함, 고독을 연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브람스라는 인간 전체, 그리고 그의 음악을 휘감는 고독의

 

기운은
그 누구의 것보다 강한 전염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브람스라는 작곡가의 뼛속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있는
고독의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궁금증을 갖게 된다. 물론 그 해답은 바로 브람스의 삶 속에 있다.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으며 자유롭게 살아 온 한 예술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고독한 음악가의 표상인 이유들과 자연스럽게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소년기에 알게 된 삶의 고독
브람스는 1933년 함부르크 태생이다. 독일 최대의 무역항이기도 한 함부르크는 상업이 발달해 외지에서 온 많은 상인들로 붐비는 곳이었지만 북부 유럽에 위치한 이 도시의 분위기는 남부 유럽과는 달리 매우 쓸쓸하고 어두운 편이다. 이런 함부르크의 환경을 브람스의 성격 형성에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다 브람

스의 아버지는 가난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여서
브람스는 그다지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진 못했다. 그는 부친의 영향 때문인지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그의 아버지는 오케스트라에 필요한 악기를 공부하기를 원했던 데 반해 브람스는 피아노에 관심을 보였다. 결국 브람스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피아노를 배우게 됐는데 집에 피아노가 없던 이 소년은 피아노 선생인 코셀의 집에서 연습을 해야 했다. 뛰어난 피아노 실력을 보인 브람스는 열 살 때 공개 리사이틀을 열어 큰 갈채를 받기도 했다.
브람스의 작곡 능력을 일찌감치 알아챈 코셀은 제자를 자신의 스승인 마르크센에게 보내 음악이론을 배우게 했다.
그렇지만 일찍 철이 든 장남 브람스는 넉넉지 못한 집안에 경제적인 보탬을 주기 위해 아직 공부를 더 해야 될 나이인 13세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고 15세 때는 결국 정규 교육을 포기했다. 그는 스승들에게 레슨을
받으며 틈틈이 작곡도 했는데
밤이면 술집이나 카페에 나가 피아노를 연주했다. 어린 브람스의 이런 생활은 건강을 해치게 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안개 낀 함부르크의 어둠침침한 술집 한구석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사춘기를 보냈을 한 작곡가의 불우한 소년 시절은 그에게 너무 일찍삶의 고독과 고단함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서곡 [ 序曲 , overture ]
오페라 ·오라토리오 ·발레 ·모음곡 등의 첫부분에서 연주되어
후속부로의 도입 역할을 하는 기악곡.
그 자체가 정돈되어 있는 내용을 갖고, 완결되어 명확한 종지감(終止感)을 줌으로써 후속부와는 독립하여 존재하는 경우도 많다.
 
이 점에서 같은 도입적 성격을 띠면서도 보다 소

 

규모적이고
후속부와 계속적으로 접속되는 일이 많은 서주(序奏)와 다르다. 역사적으로는 서곡은 우선 두 가지 중요한 형태로 분류된다. 17∼18세기에서의 프랑스풍 서곡과 이탈리아풍 서곡이 그것이다.
프랑스풍 서곡은 륄리가 그의 오페라에 느림―빠름―느림의 3부분의 서곡을 썼는데, 이것이 18세기 중엽까지 프랑스풍서곡의 정식(定式)으로 존중되었다. 그 전형에서는 제1부는 부점(付點) 리듬을 특징으로 하는 장려한 성격, 제2부는 그 모방양식, 제3부는 제1부의 재현 혹은 제2부의 코다를 이루고, 제1부와 같이 제각기 장중한 성격에 의하고 있다.

그리고 유달리 바로크시대의 오페라에 즐겨 사용되었으며,
이탈리아오페라이면서도 프랑스풍 서곡을 가진 것도 많았다. 또 오페라 이외에 자주 모음곡의 첫머리에도 쓰여졌기 때문에 모음곡 전체를 서곡이라 부르는 일도 있었다

 

(예를 들면, J.S.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제1∼4번은 원래는 서곡이라 이름붙였다).
한편 이에 대하여 17세기 말에 스카를라티가 빠름―느림―빠름의 3부분의 서곡을 창시하여, 이것이 이탈리아풍 서곡의 정식이 되었다. 이 형식은 오래 계속되어 신포니아라고도 해서, 18세기의 심포니의 선구로도 간주되고 있다.
제1부는 화성적 양식, 제 2부는 서정적인 성격, 제3부는 발랄한 춤곡풍의 성격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풍 서곡은 18세기 중엽 무렵에 소멸했으나, 신포니아는 3개의 각 부분의 규모가 점차 커져서, 독립적인 성격을 가지고 교향곡으로 발전했다.
고전파 및 낭만파에서 오페라의 서곡은
대부분 소나타 형식에 의하고 있으며, 내용도 각 장면의 주요한 음악적 소재를 미리 사용함으로써 오페라 전체와의 긴밀화를 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바그너에 이르러서는 소나타 형식은 한층 더 자유스런 형식이 되어, 인물이나 상념(想念), 사물 등을 암시하는 시도동기(示導動機:라이트 모티프)를 주요 소재로서 구성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도입부는 명칭도 서곡이라 하지 않고 전주곡(前奏曲)의 뜻인 포르슈필(Vorspiel)이라고 불렀다.
한편 19세기에는 전혀 단독적인 곡이면서도 서곡이라 불리는 교향곡적 작품도 많이 작곡되었다.
 
이들 서곡은 처음부터 오페라나 다른 무대예술에 부수되는 목적으로 작곡된 서곡과 구별하기 위해 연주회용 서곡이라고 한다.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 브람스의 《비극적 서곡》 《대학축전서곡》 등이 바로 그것이다.

Brahms - Tragic Overture Op. 81
Conductor : Herbert von Karajan -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비극적 서곡


반응형
Posted by 불멸의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