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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02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 in D major (막심 벤게로프)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 in D major, Op. 19
Prokofiev ( 1891-1953 )
Violin : 막심 벤게로프 Conductor :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 London Symphony Orchestra )


프로코피에프가 15년간의 오랜 망명 생활을 끝내고 고국 소련으로 돌아온 뒤부터는 피터와 늑대, 교향곡 5번 같은, 알기 쉬우면서도 기교가 충실한 걸작을 썼다. 그러나 청년 시대에는 급진적인 작풍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고전 교향곡과 함께 그 첨예한 작풍이 돋보이는 초기의 명작이다.
1891년 4월 23일, 우크라이나의 손초후카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살에 피아노를 능숙하게 연주 할수있었고 아홉살때 습작 오페라를 썼다. 음악원에 입학했을 무렵(13세)에는 그의 모든 거동이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거동뿐이 아니라 용모도 남달랐다.
머리는 파이프(담배)의 손잡이처럼 가느다란 목 위에 얹혀있고 피부는 핑크 빛이며 화가 나면(늘 화가 나 있었지만) 새빨갛게 변했다. 눈은 푸르고 날카로우며 두터운 입술이 앞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음악원 입학 당시 이미 네개의 오페라, 하나의 교향곡, 두개의 소나타 그리고 몇 곡인가의 피아노 소품을 작곡해 놓고 있었다.                                                -H. 숀버어그 「대작곡가의 생애」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적극적으로 청중 앞에서 연주하여 널리 소개한 사람은 시게티였다. 1924년의 프라하 '국제현대음악제' 때 시게티가 초연(F. 라이너 지휘)하여 놀라운 호응 속에 격찬을 받았다. 그후 그는 레코드에도 녹음을 했다. 현대적이고 지적인 즉물성을 소중히 여기는 시게티에게 이곡은 안성맞춤의 작품이었다. 프로코피에프는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1915년경부터 망명 직전인 1917년까지 사이에 작곡했다. 페테르부르그 음악원에 재학 중 피아노 협주곡 1번 작곡으로 루빈스타인 상을 받으면서 장래가 촉망되었으나, 전통적인 음악의 약속을 무시하고 너무 대담한 곡상을 발휘했기  때문에 교수들은 그를 요주의 인물로 치부했다.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그 시기의 프로코피에프 음악의 총결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부진 생명력을 발산하는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황홀할 정도로 신선한 악상의 눈부심 아름다움, 힘찬 불협화음의 용솟음, 참신한 바이올린의 효과, 관현악법의 명쾌한 처리 등 자세히 들어보면 고전교향곡과 아주 비슷한 움직임이 있고 음향에도 공통점이 있다. 고전파나 낭만파의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귀에 익은 달콤한 선율은 없지만 프로코피에프가 구사하는 가락은, 특히 3악자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선율은 조금도 낯설지 않은 친근감을 준다. 당시 너무 첨단적이어서 음악원 교수들까지도 뜨악하게 여겼다고 하지만, 오늘의 시점으로 다시 검토해 보면 결코 프로코피에프는 전통을 무작정 거역한 작곡가가 아니었다고 숀버어그는 지적한다.
········ 프로코피에프는 전통의 테두리 안에서 작곡하고 있었음을 알수있다. 그는 주로 19세기의 형식을 썼으며 그 음악은 불협화음을 많이 쌓아 올리고 있으나 조성적이었다. 그것은 강한 개성의 음악이며 많은 특이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그자질에는 민첩함, 저돌성, 확신감, 맹렬한 운동 신경이 있다. 프로코피에프는 깊이가 있는 작곡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최고의 경지에 있을 때의 그의 투명하고 명석하며 예리한 음악은 이를 데 없이 상쾌하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 수도 있었으나 멜로디는 프로코피에프 음악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가 목표하는 것은 낭만적인 음악 관습에 대한 첨예하고 열렬하며 엄격한 공격이었다. 결국 그의 음악은 많은 사람이 생각할 정도로 혁명적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지금도 힘차고 남성적이며, 당시 음악이 거의 소멸된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다부진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 「대작곡가의 생애」
제1악장은 안단티노이며 바이올린이 독주하는 명상적인 주제가 비올라의 트레몰로를 타고 나타난다. 곡을 들으면 프로코피에프의 슬라브적인 정서가 차이코프스키나 글라즈노프와는 전혀 다른, 이지적이며 세련된 감각을 지녔음을 깨닫게 된다.  
 

제2악장은 스케르쪼이며 발랄하고 빠른 템포로 치닫는다. 엄청난 바이올린의 기교가 필요하다. 
 

제3악장은 모데라토이다. 변주곡 같은 성격이면서도 풍성한 선율을 간직한 감명 깊은 악장이다.

Itzhak Perlman,BBC Symphony Orchestra,Gennady Rozhdestvensky,22 October 1980
 
프로코피에프는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초연했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널리 소개한 시게트를 자기 음악의 '최고의 이해자'라고 찬양했고 또 시게티도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로 삼았다. 만년의 녹음인 이레코드는 비록 기교가 많이 쇠퇴되고 기력도 떨어졌으나 지적이며 예리한 곡의 파악과 깊은 정신성 그리고 근엄한 표정이 듣는 이를 숙연하게 만든다. 흔히 시게티의 연주 양식을 '신즉물주의 '라고 한다. 분명 그의 출현은 바이올린 음악을 대중적인 곡예사 같은 기교 과시나 살롱풍의 달콤한 정감 노출로 부터 일약 곡의 핵심에 육박하는 엄격한 음악으로 바꾸어 놓았다.
비슷한 시기(1959~1960)에 녹음한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및 파르티타(Vanguard, HM 54/55/56)에서 그렇듯 가슴에 파고드는 엄숙함을 들을수있다. '소나타 A단조'의 안단테를 시게티만큼 혼신의 힘을 다해 절실하게 연주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를 말할때 고결한 이념, 높은 정신성을 거론한다. 그러나 그를 단지 그면에서만 파악하여 "기교는 좀 떨어져도 악보에 충실하고 높은 정신성을 지녔다"고 단정해 버리는 평가는 20세기 최고의 명연주가인 시게티의 참모습을 헤아리기 위한 올바른 접근 방법이 아니다. 그의 예술은 좀더 유연한 폭을 지녔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좋은 예로, 음질은 좋지 않지만 시게티 최초의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녹음(1935)을 들수 있다. 40대초의 전성기 연주이며 확고한 기교와 엄격한 형식감, 긴장감 감도는 정신성과 아울러 일종의 화려함이 전곡을 감싸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Sergey Prokofiev Violin Concert No 1, in D major, Op. 19
Violin : Maxim Vengerov Conductor : Mstislav Rostropovich ( London Symphony Orchest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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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악장   Andantino
2악장   Scherzo  Vivacissimo
3악장   Moder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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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불멸의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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