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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28 브루크너 교향곡 8번 in C Minor (첼리비다케)


브루크너 교향곡 8번 in C Minor
Anton Bruckner ( 1824-1896 )
Conductor : Sergiu Celibidache ( Munchner Philharmoniker )


브루크너는 번호가 붙은 교향곡 9편 이외에 사후 발견된 습작 교향곡 2곡(0번과 00번)을 포함해 모두 11곡의 교향곡을 남겼는데, 그 중 9번은 3악장까지만 작곡하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해 미완성으로 남겨졌기에 8번 교향곡은 완성된 마지막 대작이 되는 셈. 불레즈는 언젠가 말러와 브루크너의 관계를 쌍둥이 자리의 카스토르와 폴뤽스에 비유한 바 있습니다. 불레즈는 말러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는 중 브루크너의 서거 100주년 기념을 기념하는 공연을 제의 받고 흔쾌히 수락하면서 이틀 간의 공연에 이 작품을 연주하기로 했습니다. 1996년 9월 21일과 22일 오스트리아 린츠의 성 플로리안 성당에서 연주된 곡 연주에는 작곡가 자신의 판본인 하스(Haas) 판이 사용되었습니다. 귄터 반트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이 선배와 마찬가지로 불레즈 역시 삭제되고 축약된 부분이 많은 노박(Novak) 판 보다는 작곡가의 본래 의도가 잘 살아 있는 하스의 편집 악보를 사용했습니다.
이 방대한 교향곡은 브루크너 자신의 쾌심작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교향곡이라 생각하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브루크너는 60세에 이르러 겨우 인정을 받은 작품「제7교향곡」으로써 일단 성공했으며, 그 성공에 힘을 얻어서 이「제 8교향곡」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영웅적인 의도와 그 정신을 반영시키는 대 규모의 구성을 지닌 것으로, 브루크너의 생명이라고도 할 만한 대위법의 교묘한 사용법이 멋진 통제에 의해 불후의 교향곡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전곡이 완성된 것은 1885년이지만, 훗날 브루크너의 친구와 제자의 충고를 받아들여 1890년에 보충하여 썼습니다. 이 교향곡을 쓰던 무렵의 부르크너는, 체력의 쇠퇴를 느꼈고 마음 속에는 죽음의 예감조차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교향곡에는 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군데군데 죽음의 예고가 나타나 있습니다. 브루크너의 행복한 시절에 착수되었지만. 개정을 거듭하는 동안에 세월이 흘러 말년의 브루크너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규모와 구상의 웅대함은 역시 대표적인 걸작이라 일컫기에 어울립니다. 초연은 1892년 12월 리히터의 지휘로 행해졌습니다.
제1악장 Allegro moderrato.
단테의 신곡(神曲)의 지옥편. 깊은 수렁으로 내려가는 듯한 '죽은의 때'가 엿보입니다.
제2악장 Scherzo.
브루크너 자신이 이 악장을 '독일의 야인'이라 부르고 있다. 튜톤사람특유의 풍류를 모르는 성격인 자기 자신을 상징하여
여기에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제3악장 Adagio. 종교적인 정화.
제4악장 빠르지 않고 장중하게.
브루크너가 만든 최후의 제 4악장(최후의 작품 제 9교향곡에는 제 4악장이 없습니다). 장대하고 압도적인 끝곡.
브루크너와 말러 모두 신에게 다가서려 했던 작곡가들이었습니다. 브루크너는 신을 만났지만 말러는 끝내 신의 주변만을 서성거려야 했다. -브루노 발터 36년이라는 나이 차이는 있었지만 세기말을 살다간 동시대의 이 두작곡가 모두에 정통했던 몇 안 되는 지휘자 발터의 이 말만큼 브루크너의 음악을 잘 나타내는 말이 또 있을까? 말러의 직계 제자였던 발터의 이런 발언은 그런 만큼 말의 무게를 더 갖게 합니다. 평생을 교회와 음악공부에 전념했던 브루크너. 그의 음악은 신 앞에 무릎을 조아리고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신앙고백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계속된 그의 간청들은 어느 새 그를 신의 곁으로 다가서게 했고 그의 그런 음악들은 후대에 남겨져 그의 음악을 듣는 우리들로 브루크너는 글자그대로 대기만성형의 음악가였습니다. 
교향곡으로 유명한 이 음악가의 첫 교향곡은 마흔이 넘어서야 완성되었으며, 그나마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예순에 완성한 제7번에 이르러서입니다. 7번의 성공으로 후속작인 8번을 빠른 시일 안에 완성하게 되지만 좋지 못한 평을 듣고5년이란 장고의 개정기간을 거쳐 초연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4년후인1896년10월11일에 사망합니다. 이 기간에 작곡된 9번이 있긴 하지만 이 교향곡은 마지막 악장이 미완으로 남아 실질적으로 8번이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후기 교향곡들인 7, 8, 9번은 그는 작품들이다. 특히 다단조 교향곡은 그의 교향곡들 중에도 최고봉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작품이며, 그의 음악에 있어 최고 경지의 것들을모두 담아 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브루크너와 피에르 불레즈의 이채로운 만남연주가 이루어진 1996년은 브루크너의 서거 100주기가 되는 해로 이 타이틀은 그가 생전에 봉직하고, 죽은 후엔 그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성 플로리안 성당에서의 실황연주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타이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연주를 이끌고있는이가20세기 클래식 음악계의 전위에 나서 있는 피에르 불레즈라는 점입니다. 현대음악의 골수 옹호자인 그가 낭만시대의, 아니 그 이념적 뿌리는 바로크에 두고 있는 브루크너를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음악적 실험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시도가 브루크너 연주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는 빈 필과 이루어 졌다는 점입니다. 이제 막 고희를 넘긴 노 지휘자의 결과물을 놓고 서로 상반된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연주는 분명 최상급의 사운드를 만들어 내고있습니다. 특히 브루크너 교향곡에 있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음향 문제인데, 그의 연주는 여타의 어느 연주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음향연구 소장이었던 그의 경력을 보면 쉽게 수긍이 가는 부분일 것입니다.
부르크너(Anton Bruckner, 1824∼1896)
브루크너는 만사가 느릿느릿한, 중국 사람을 빗대어 말할 때 흔히 쓰는 '만만디'라는 단어가 꼭 어울리는 음악가였습니다. 음악을 본직으로 삼기로 마음먹은 것이 27세, 교향곡이나 악기법을 배우려고 키츨러라는 선생의 문을 두드렸을때가 37세였으니 말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제1악장에서조차 규모가 크고 장중하며 진행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브루크너에게 빈 사람들은 '아다지오 콤포니스트(느릿느릿한 작곡가)'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는 일생을 깨끗한 독신으로 보내면서 어린애와도 같은 천진무구함으로 일관했습니다. 물질욕이 없고 일상 생활은 검소했으며 늘 머리를 짧게 깎고 다녔습니다. 형편 없는 촌뜨기 사투리에 헐렁한 옷을 입고, 아는 것이 많은 도시인들을 항상 두려워했습니다. 상부 오스트리아의 한촌 안스페르덴에서 학교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성 프롤리안 수도원의 아동 합장대원이 되었습니다. 32세때 린츠의 돔 전속 오르간 주자가 되기 전까지 15년 간은 마을 초등학교 교원직에 있으면서 수도원의 보조 오르간 주자로서 하느님에게 봉사했습니다.
1871년, 47세의 나이로 그는 런던 국제 오르간 경연대회에서 1등의 영광을 안음으로써 오르간 연주와 즉흥연주의 명성을 전유럽에 떨쳤습니다. 세계 일류의 오르간 연주자로서의 그의 지위는 60세까지도 확고했습니다. 그의 교향곡은 오르간이 끼어 있지 않아도 그 울림이 왠지 오르간처럼 들린다는 평도 있거니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닙니다. 믿음이 깊은 카톨릭 신자였으므로 초기 작품에는 단연 종교음악이 많지만 슈베르트의 후기 양식에 의해 작곡한 가곡도 더러있습니다.

그는 자기 작품에 대해 소심할 정도로 신중했습니다. 그의 교향곡 가운데〈작품 0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교향곡 번호를 제 1번부터 제 9번까지 붙였는데, 어느날 제1번보다 먼저 습작처럼 썼던 교향곡 악보를 서랍에서 발견했습니다. 다시 보니 그 작품도 괜찮다 싶어 번호가 붙은 교향곡 대열에 집어넣기로 마음먹고 보니 이미 통용되고 있는 번호를 하나씩 뒤로 미루는 것도 이상해, 고민 끝에 결국 제0번이라는 음악사상 전무후무한 번호를 붙였다는 것입니다. 이 한 예에서도 융통성이 없는 그의 성격을 볼 수 있습니다.
요사이는 세계 주요 국가에 브루크너 협회가 생길 정도로 그는 위대한 작곡가 대접을 받고 있지만 살아생전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40세 때 제1번 교향곡을 발표해 냉대를 받았고 50세 때 제2교향곡은 악평을 받았으며 제5, 제6, 제9교향곡은 어느 악단도 연주해 주지 않아 작곡가인 그 자신도 생존 중 실연을 직접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60세 때의 제7교향곡에서 비로소 승리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길고 험한 길이었는가. 작곡가로서 그의 명성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나 지난 제1차세계대전 후부터였습니다.
소년 시절 사랑했던 한 소녀를 평생 잊지 못해 독신으로 지내면서 오로지 하느님을 섬기며 구도자와도 같은 형극의 길을 스스로 걸은 작곡가였기에 그의 음악에는 깊은 종교심이 배어 있습니다.

Bruckner - Symphony No, 8 in C Minor - Conductor : Sergiu Celibidache ( Munchner Philharmoniker )
전악장 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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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악장   Allegro moderato
2악장   Scherzo. Allegro moderato - Trio. Langsam
3악장   Adagio. Feierlich langsam doch nicht schleppend
4악장   Finale. Feierlich nicht schn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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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giu Celibida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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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불멸의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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